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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홍사모, 파란 이재명 품으로 급선회

 보수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핵심 지지층 일부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번 대선을 둘러싼 정계 재편에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홍 전 시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던 지지자 단체 ‘홍준표와 함께 한 사람들’은 13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과거 홍사모, 홍사랑, 국민통합연대, 그리고 홍 전 시장 대선 캠프의 SNS팀 등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온 핵심 지지 기반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남국 국민통합찐홍 회장은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단순한 지지를 넘어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이재명 후보의 압도적 승리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신영길 홍사모 중앙회장도 “국민의힘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보수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며 “홍준표가 지향했던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통합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번 결단은 최근 보수 진영 내 혼란스러운 대선 경선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홍 전 시장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바 있으며, 이후 김문수 후보가 국민의힘 최종 후보로 선출되자 내부에서는 단일화 실패와 당 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이들은 “국민의힘 경선은 파행으로 점철되었으며, 많은 보수 유권자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후보는 전날 홍 전 시장을 향해 “진정한 정치가”라며 통합의 메시지를 전했고, “돌아오시면 막걸리 한 잔 하자”는 제안도 함께 내놓으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에 홍 전 시장의 지지층이 화답하듯 이 후보 지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이날 일정을 시작하며 대구·경북·울산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보수 지역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21대 대선에서 영남권 최고 득표율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구미역 광장에서 “지금은 좌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의 삶이 중요하다”며 “이념과 진영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필요한 정책은 누구의 것이든 받아들여야 한다. 박정희 정책이든, 김대중 정책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국민의 삶”이라며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통합과 실용의 이미지를 강화하고자 전통적으로 진보를 상징하는 파란색에 더해 보수를 상징하는 빨간색을 선거 홍보물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후보가 착용한 선거 운동화와 점퍼에도 두 색이 함께 어우러졌으며, 선대위 관계자 명함에도 빨간색이 가미됐다. 이러한 시도는 진영을 초월해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해 “홍준표 전 시장의 지지층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은 통합의 상징적 사건”이라며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하나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선대위 조승래 수석 대변인도 “대구·경북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며, 진정한 개척정신의 상징”이라며 “이 지역에서의 국민 통합 메시지가야말로 국가를 다시 일으킬 핵심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국민의힘은 갈수록 극우적 성향으로 쏠리고 있고, 김문수 후보와 윤석열 친위 세력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 합리적 보수층이 설 자리를 잃었다”며 “이런 가운데 이재명 후보의 통합 메시지에 보수층이 응답한 것은 정치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 후보가 홍 전 시장을 ‘가장 부담스러운 상대’라며 칭찬한 내용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 간의 관계 복원이 새로운 정계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홍 전 시장의 책사로 알려진 이병태 KAIST 교수까지 민주당 선대위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지며 향후 홍 전 시장 본인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인다.

 

이처럼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 일부가 진보 진영 유력 후보를 지지하는 이례적인 상황은 이번 대선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통합과 실용이라는 가치가 앞으로의 정치 흐름을 이끌어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