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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라 스칼라' 음악감독로 발탁.."247년 역사 동양인 최초"

1778년 개관한 라 스칼라 극장은 주세페 베르디, 자코모 푸치니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명작이 초연된 오페라의 본산으로, 세계적인 성악가와 음악가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통한다. 이 극장의 음악 감독은 공연 작품 선정, 오케스트라 및 단원 구성 등 음악적 전반을 책임지는 핵심 직책이다. 지금까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무티, 다니엘 바렌보임 등 세계 최고의 지휘자들이 이 자리를 맡아왔다.
이번 선임은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 라 스칼라 극장 총감독이 이사회에 공식 제안한 안건으로, 이사회는 이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정명훈의 임기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로, 오르톰비나 총감독의 임기와 함께 종료될 예정이다. 주세페 살라 밀라노 시장 겸 극장 이사회 의장은 회의 후 “총감독이 인사 제안을 했고, 그 제안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다”며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지지했다”고 밝혔다.
현재 음악 감독직을 수행 중인 리카르도 샤이 역시 이번 결정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샤이는 “오페라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이번 발표는 적절하다”며, “지휘자와 연출, 성악가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오페라 제작 특성상 이번 선임은 시의적절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알레산드로 줄리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라 스칼라 극장은 완전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는 이번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명훈은 이미 라 스칼라 극장과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인물이다. 1989년부터 총 84회의 공연과 141회의 콘서트를 이끌었으며, 이는 역대 음악 감독으로 임명된 인물을 제외하고 최다 출연 기록이다. 그는 이 극장에서 베르디, 푸치니 등 주요 작곡가의 오페라를 지휘하며 탁월한 해석력을 인정받았고, 특히 베르디 작품 해석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2023년에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첫 명예 지휘자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그 이전에도 러시아 볼쇼이 극장과의 협업으로 라 스칼라 극장의 해외 공연을 지휘한 바 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그를 “밀라노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음악적 깊이와 라 스칼라와의 인연이 이번 선임의 주요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해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78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임명되면서 지휘자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단 등의 음악 감독을 역임하며 유럽 음악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현재도 그는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 객원지휘자, 파리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명예 음악감독, KBS 교향악단의 계관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서울시향 예술감독을 맡아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고, 해외에서는 명실상부한 세계적 지휘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정명훈의 이번 선임은 단순히 한 지휘자의 영예에 그치지 않는다. 아시아 출신 지휘자가 유럽 클래식 음악의 본산 중 하나인 라 스칼라 극장에서 핵심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음악계 전반에서 다양성과 실력 중심 평가가 확대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의 지휘 아래 라 스칼라 극장이 어떤 예술적 변화를 맞이할지,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