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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죽음의 설비' 그대로 두고 1000억 어디에 썼나... SPC 안전투자 실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SPC 산업재해와 관련해 "이전에도 1000억원을 들여 동일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조치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고 언급했다. 이 1000억원은 2022년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 근로자 사망 사고 후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발표한 안전 경영 계획 예산이다.

 

SPC그룹은 올해 4월 말까지 관련 예산의 약 92%인 916억8000만원을 집행했다. 세부적으로는 안전 설비 확충 및 장비 안전성 강화에 408억3000만원, 고강도 및 위험 작업 자동화에 252억6000만원, 작업 환경 개선에 204억4000만원, 기타 항목에 51억5000만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예산 대부분이 집행된 직후인 5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근로자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작업 중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3년간 SPC 계열 공장에서는 3건의 사망 사고와 5건의 부상 사고가 발생했으며,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SPC 계열사에서 발생한 산업 재해는 572건에 달한다. 5월 사고 후 SPC그룹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5월 말까지 안전 설비 확충 및 고강도 위험 작업 자동화 등에 총 969억원을 투입했다.

 

SPC그룹이 투입한 예산은 주로 안전장치와 노후 기기 교체, CCTV 설치, 통로 확장 등 작업 환경 개선에 사용됐다. 특히 근골격계질환과 끼임 사고 방지를 위해 시설을 개선하고 장비를 교체했지만, 안전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SPC가 생산하는 제품이 수백 가지로 다양해 공정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일부 작업은 사람이 직접 설비에 접근해야 하므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한 납품 기한 준수를 위해 안전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과 30년 이상 된 노후 설비 문제도 지적됐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안전 경영 명목으로 1000억원을 투자했지만 기존 생산 효율성에만 투자했을 뿐, 작업 방식을 바꾸는 등 산업 안전·보건을 위한 새로운 투자는 없었다"며 "2인 1조 시스템 등 안전 매뉴얼에 따라 작업했다면 비극이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명예교수는 "30년 이상 된 설비·시설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사고 위험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다"며 "노후 설비·시설을 전부 철거하고 안전 설계에 맞춰 새로 짓지 않으면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SPC그룹은 "계열사와 공장이 많은 탓에 미처 안전 설비를 설치하지 못한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사고가 난 설비는 전부 철거하고 새로운 안전 설비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PC그룹은 총 27개 계열사 공장 중 17개가 빵과 과자 등을 생산하는 제조 공장이다.

 

SPC그룹은 위험 작업 자동화를 위해 2027년까지 624억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며, 이 중 543억원은 안전·자동화 시설 교체 및 설치에 사용된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한 '주·야간 12시간 맞교대'를 개선해 생산직 야근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등 생산 시스템 전면 개혁을 약속했다.